나의 삶 / / 2025. 3. 5. 09:51

봄에 관한 시 5편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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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림의 봄 (조향미)

함양 상림을 지날 때는 언제나 겨울

잿빛 가지들만 보고 지나쳤다

그 오랜 숲은 지치고 우울해 보였다

길가 벚나무들 방글방글 꽃 피울 때도

숲은 멀뚱하니 바라만 보았다

또 봄이야 우린 이제 지겨워

늙은 나무들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보름 만에 다시 상림을 지났다

아니, 지나지 못하고 거기 우뚝 섰다

천년 묵은 그 숲이 첫날처럼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시커먼 고목 어디에 그렇게 연한 피를 숨겼는지

병아리 주둥이 같은 새잎들이 뾰족뾰족

각질을 뚫고 나왔다

작은 물방울이 톡톡 터지는 소리도 들렸다

온 숲에서 달콤한 솜털 뽀얀 아가 냄새가 났다

봄바람은 요람인 듯 가지를 흔들고

새잎 아가들은 연한 입술로 옹아리를 한다

그만 모든 것 내던지고 싶은 이 만신창이 별에서

숲은 무슨 배짱인지 또 거뜬히 봄을 시작한다

참, 환장하겠다.

조향미 시인의 '상림의 봄'에 나온 상림 숲

 


봄 밤 (송찬호) 

 

낡은 봉고를 끌고 시골 장터를 

돌아다니묘 어물전을 펴는

친구가 근 일 년 만에 밤늦게 찾아왔다

 

해마다 봄이면 저 뒤란 감나무에 두견이 놈이 찾아와서

몇 날 며칠을 밤새도록 피를 토하고 울다 가곤 하지

그러면 가지마다 이렇게 애틋한 감잎이 돋아나는데

 

이 감잎차가 바로 그 두견이 혓바닥을 뜯어 우려낸 차라네

나같이 쓰라린 인간

속을 다스리는 데 아주 그만이지 

 

친구도 끄덕였다

옳아, 그 쓰린 삶을 다스려낸다는 거!

 

눈썹이 하얘지도록 서로의

이야기를 나두다 새벽 일찍

그 친구는 상주장으로 훌짝 떠나갔다

문가에 고등어 몇 마리 슬며시 내려놓고 

송창호 시인의 '봄 밤'에 나온 두견새


옳지, 봄 (김영진) 

 

난생 처음 엄마, 말문 트이고 걸음마 배울 때 

 

엄마가 장단 맟추는 소리, 

 

박 같은 엄마 젖을 떼고 이유식을 받아먹을 때

 

아기의 웃음을 맛있게 먹으며 칭찬하는 소리, 

 

옳지, 

 

그 소리에 힘을 받아 두 발로 일어선다. 

 

우주는 아름답고 세상은 불안하지만

 

기어 다니다 일어서니 눈높이가 봄의 키다. 

 

봄이란 아기처럼 일어서는 거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우주도 손뼉 치며, 

 

옳지, 

봄을 아이에 비유한 김영진 시인의 '옳지, 봄'


봄날 (이문재) 

 

대학 본관 앞

부아앙 좌회전하던 철가방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저런 오토바이가 넘어질 뻔했다.

청년은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막 벙글기 시작한 목련꽃을 찍는다. 

 

아예 오토바이에서 내린다. 

아래에서 찰칵 옆에서 찰칵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 찰칵찰칵 

백목련 사진을 급히 배달할 데가 있을 것이다. 

부아앙 철가방이 정문 쪽으로 튀어간다. 

 

계란탕처럼 순한

봄날 이른 저녁이다. 

백목련 사진을 찍는 배달원을 그린 이문재 시인의 '봄날'


봄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이성부 시인의 '봄'

시 중에서도 봄을 노래한 시는 유난히 많다. 클래식에서도 계절 중 봄을 표현한 곡들이 제일 많은 것과 같다. 다만, 대중가요 속에서는 여름이나 겨울을 노래한 것이 더 많다. 
서정성을 나타내는 봄과 가을, 대중성을 나타나는 계절은 여름과 겨울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위 5편의 시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는 단연, 조향미 시인의 '상림의 봄'이다. 조향미 시인의 거의 모든 시가 자연에 대한 매우 세세한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함양 상림이라는 곳은 실제로 가보지 못했지만, 그곳의 풀내음과,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 흙속에서 뚫고 올라오는 새싹들까지 모두 온 몸으로 느껴지는 듯하다. 
봄을 목전에 둔 3월 초가 되니 빨리 따스한 봄이 기다려진다. 물론 유독 날카로운 꽃샘 추위를 거쳐야겠지만 그마저도 빨리 맞이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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